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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케아 책장를 조립하다가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풀 냄새, 흙 냄새처럼 항상 맡는 냄새들은 그렇게 구체적인 시절이 떠오르진 않지만, 이케아 나무 냄새같은 특이한 냄새들은 간간히 나를 구체적인 시점의 과거로 돌려놓는다.
이케아 책장은 참 신기하다. 15년이 지나도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나무의 촉감이나 냄새던, 참 이해하기 쉽게 만화같이 그려놓은 설명서던 정말 변한 게 하나 없다. 그 와중에도 그렇게 인기가 많고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면 정말 명작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이케아 가구 조립을 참 좋아했다. 레고 조립같이 창의적이지는 않아도 실제로 내가 몇 년같을 쓸 만큼 크고 복잡하고 쓸모있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게 뿌듯했다. 어릴 적에 그 6단 서랍을 척척 혼자 조립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릴 적 나는 정말 꼼꼼하고 영리했었나 보다.
오늘 일요일 여유를 즐긴답시고 음악을 틀고 흥청망청 책장을 조립하다가 큰 나무판의 방향을 반대로 조립해서 낑낑대며 다시 분해를 하고 조립을 하다가 잠시 반성이 되었다. 13살짜리 애도 조립하던 것을 지금 내가 바보같은 실수를 한 것을 보고 내가 약간 한심하기도 해 보였다.
- 그 당시 나는 노래도 듣지 않고, 열심히 이사하는 가족을 보면서 나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불만없이 열심히 조립만 했었다. 지금 나는 가구를 조립하면 뭔가 귀찮고 심심할 것 같아서 음악을 꼭 틀어야 했다.
- 나는 만화같이 생긴 설명서를 보면서 구멍의 위치나 미세한 나사 방향까지 살펴볼 정도로 꼼꼼했다. 지금 나는 설명서의 화살표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있나 생각해보자면:
- 예전에 쓰던 아마존에서 최저가로 산 플라스틱 책장보다 이케아 책장이 더 안정적이고 디자인적으로 좋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케아 물건들이 좋고 미적으로 뛰어나다고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예전에 부모님이 사주시는 책장이 아니라 내 돈으로 사서 그런 걸수도 있겠다)
- 이제 나는 책장을 옆에 두고 그림을 올려두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한시간 정도 창밖을 보면서 진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예전이었으면 그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더 자극적인 재미를 찾았을 것이다.
지금이 나은가 아니면 예전이 나은가? 너무 흥청망청 인생을 살아 인생의 현실적인 일들을 제대로 해결 못 하는 것도 문제지만, 창밖을 보지 않고 방구석에서 옳은 것만 찾는 것도 문제다.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노화로 인해 호르몬이 바뀌면서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일지도.
너무 타이트 하면 종종 풀어줘야 되고, 또 너무 풀어지면 조여줘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