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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입사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함께 교육받던 인턴들은 하나둘씩 떠나가고 나는 점점 정직원같이 대우해 주려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점심시간이 끝나고 IT 관리하는 직원이 와서 오늘 장이 끝나면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나와 인턴들이 지내던 오피스 구석 자리에서 오피스 한 가운데 자리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한 생각이 앞섰다. 나는 아직도 오피스가 낯설다고 생각이 드나 보다.
장이 끝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기 무섭게 직원이 와서 컴퓨터와 모니터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새 자리에 나를 앉혔다. 이제 앞으로 내 오른쪽 자리에는 하루에 수십번은 욕하는 4-5년차 트레이더가 앉을 것이고, 왼쪽 자리에는 십분마다 경제 뉴스를 소리치는 2년차 트레이더가 앉을 것이다. 앞으로 내 자리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 곳에서 몇 년간 매일 출근할 것이니, 앞으로 오래 볼 얼굴들이다.
리스크 팀에서는 내 계정의 한도를 200배 정도 늘려줬다. 이전에는 옵션을 1개씩만 거래했지만, 이제는 10개씩 거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전에는 옵션의 최대 값어치가 10 불이었지만, 이제는 200불로 늘어났다.
하지만 내 자리의 가장 큰 변화는 모니터 개수다. 예전은 인턴들과 함께 모니터를 2개 써왔지만, 자리를 옮기면서 모니터 두 개도 더 달아주었다. 모니터 4개를 보니 수많은 창들과 차트들을 한번에 띄워 놓아 다 둘러보려면 목이 아플 정도다. 문득 최근 보는 어떤 유튜버가 모니터 8개짜리 자리가 멋있어서 프랍 트레이더로 전향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어떻게 보면 멋있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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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간 출근하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날 때가 많아졌다.
예전에 거래하던 옵션들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0.05, 아무리 많이 잃어도 $0.1 인 식으로 아주 싸고 bid-ask spread (매수-매도 호가 차이) 가 작은 것들만 거래했었다. 물론 첫 몇 주간은 이런 것들을 사고 팔아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지만, 역시 몇 주가 지나니 점점 마음이 편하게 트레이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날은 수백불씩 벌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수백불씩 잃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수백불 정도 수익으로 나름 괜찮은 성적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모두가 퇴근한 오후 5시에 내 계정 활동 내역을 보던 어떤 트레이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가 지금 트레이딩 해서 +몇백이라고 너 계정에 써 있기는 하지만, 너가 거래하는 스프레드는 수수료가 매우 높아. 사실상 너는 거기서 수수료를 포함하면 마이너스야. 그런 거래들은 최소 몇천은 벌어야지 실제로도 마이너스가 아닌 수익이야.'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둘째치고, 사실 숨이 좀 막혀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마라톤을 뛰고 왔는데 이제는 더 무거운 옷을 입고 다시 마라톤을 뛰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수천불씩 잃기 싫어서 호가 차이가 적은 옵션들을 거래하는데, 이제 그런 생각도 버려야 하고, 수천 불을 벌 생각을 하면서 수천 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야 내 한도를 왜 늘려 줬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모니터 1 개로, 느린 손으로 엉금엉금 트레이딩을 하루에 한두어개 정도만 하면 나는 돈을 크게 잃을 일도, 크게 벌을 일도 없다. 뭐 하루에 ±수십 불이라고 하면 위험할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이러면 수수료를 제하면 계속 마이너스만 반복될 것이다.
이제 이 많은 모니터도, 몇배로 뛴 한도도 결국에는 내가 리스크를 더 많이, 더 빨리 이겨내서 더 많은 리턴을 얻으라는 이야기다. 내 어께에 견장을 많이 달아 줄수록, 나는 더 어렵고 위험한 장에 들어가서 승전보를 들고 와야 한다.
너무 일에 과몰입한 것일까?
어께에 달린 견장을 잠시 내려놓고 리스크를 멀리 한 채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바깥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는,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들이 요즘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생각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