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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서울 여행기

주네스 2025. 2. 20. 13:56

 

오랜만에 방문한 서울. 이렇게 쭉 뻗은 길에 산까지 보이는 뷰는 정말 예쁜 것 같다. 다만 이렇게 공기가 깨끗한 날이 흔치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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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조카는 벌써 만 4살이란다. ‘삼촌’ 이라는 개념을 알 지 모르겠지만, 낯을 엄청 가리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주는 게 느껴졌다. 

 

가끔은 '아이들과의 교류도 내 정서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보면 고양이들의 골골거리는 저주파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도 수두룩한데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180724-the-complicated-truth-about-a-cats-purr

 

아이들의 귀여운 손, 똘망똘망한 눈동자, 애교 하이톤도 비슷하게 안정감을 줄 수도?





그 와중에 조카 옷 스타일이 은근 느낌 있어 보인다. 저건 부모가 사서 입히겠지만, 아이의 취향도 반영 되어 있을까? 아니면 부모가 어릴 적 사 입히는 옷이 아이의 취향을 정해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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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 생일이 어제였더라.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서 케익을 사 달라고 하고 둘이 스타벅스에서 미리 만나서 생일 편지를 썼다. 좀 귀여운 감성인데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이런 경험을 내 인생에서 또 할 일이 있을까?

 

어제 생일이었던 내 교포 대학 친구 T 는 한국이 많이 낯설어 보였다: 의류수거함에 재활용품을 넣으려고 해서 거긴 옷 넣는 곳이라고 말해줘야 할 정도다. 한국에 7년만에 와서 문화도 익숙치 않고 한국 생활도 해 본 적 없지만 분리수거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착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미국에서 온 친구라 그의 에어비엔비에서 소박한 생일을 축하하고, 양꼬치와 술 한두 잔을 하고 그의 에어비엔비에서 새벽 4시까지 인생 얘기와 토론을 하다 나왔다. 1월 1일 새해 첫날을 그렇게 친구들과의 토론으로 보낸 셈이 되었지만, 간만에 말이 정말 잘 통하는 사람들과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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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2시쯤 일어나니 뭔가 집에서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아무래도 점수를 좀 따야 할 것 같아서 엄마아빠를 데리고 어복쟁반을 사 드리러 갔다. 피양옥을 가려고 했는데 그새 이전했더라. 한국은 정말 너무 빨리 변한다.

 

그래도 냉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찬 날씨에 냉면이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부모님한테 밥을 한 끼 사 드리면서 생색을 은근슬쩍 내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색내면서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부모님밖에 없다.

 

 

 

아, 어복쟁반도 매우 맛있었다. 이런 삼삼한 고기 맛을 은근히 해외에서는 접하기 힘들다. 예전에 행복에 대해 고뇌하다 찾은 서인국 교수님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여기 올려본다: (인터뷰에서 '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나라에서 죽고 싶지 않았고' 라고 말씀하실 정도)

온통 먹는 얘기다. 2002년 월드컵 하면 빨간색이 떠오르듯, 요새 TV 채널들은 곧바로 음식을 연상시킨다. 예전에는 방송에서 숨은 골목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냉장고 뒤에서 형체가 불분명해져 가는 재료들을 모아 요리 만드는 시합도 하고, 유명 셰프의 수다를 들으며 유럽의 음식점도 탐방한다. 혹시 외계인이 요즘 한국의 TV 방송을 모니터링한다면, 지구인은 먹기 위해 산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인간은 먹는 것에 왜 이토록 열광을 할까? 한마디로 음식을 먹을 때 뇌에서 강렬한 쾌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먹는 행위의 본질은 쾌감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외부에서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동물이 이 먹기 행위를 꾸준히 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이 고안한 기발한 장치가 바로 쾌감이다.

왜 한우 등심이나 과일을 먹으려는 사람은 주변에 많은데, 돌이나 핸드폰을 삶아 먹는 사람은 찾을 수 없을까? 몸의 유익을 고려해 뇌는 쾌감이라는 보상을 선별적으로 켜주기 때문이다. 고기와 같은 필요한 영양분이 담긴 것을 먹을 때 쾌감 전구를 켜 주지만('맛있다'라고 우리는 표현한다), 돌을 먹을 때는 쾌는 없고 이만 부러진다. 돌을 만지며 식탐을 느꼈던 자들은 뇌의 중요 장치가 고장 났다는 뜻이고, 이런 자들은 진화의 그물망에 걸려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 이 쾌감(즐거움)은 행복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인의 행복을 조사해 보면, 일상에서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다. 먹기와 말하기. 쾌와 행복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도 막상 먹기 위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 뭔가 불편하고 허망할 때가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동물 한 마리가 생각난다. 돼지.

이 대목에서 우리 생각에 돼지를 주입시킨 대표적인 사람은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배부른(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그의 사감 선생님 같은 말씀. 하지만 밀의 배부른 돼지 비유의 핵심 포인트는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탐욕에 대한 경계였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배고픔은 인간의 소유욕을 전반적으로 높인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없는 것들까지도 많이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먹는 행위는 야생의 동물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매우 적극적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같이 먹을 때 즐거움이 증폭됐다. 지금도 동양에서는 잔치를, 서양에서는 축제를 하는 주목적은 음식을 같이 먹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렇게 훈훈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은 것은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 배고픔은 인간이 늘 시달렸던 문제였고 이 고질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음식을 나누어 주었던 친구가 어려울 때 내게 음식을 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소소한 즐거움의 합이다. 한국의 탁월한 음식 문화 덕분에 우리는 먹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받은 자들이다. 밋밋한 평양냉면의 맛을 한국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해하겠는가. 냉면을 먹으며 내가 한국인임을 감사할 때가 있다. 먹는 즐거움은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선물이다. 혼자 먹으려는 것이 문제이지 먹는 즐거움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행복은 우리만큼 쾌락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註: 위 글은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조선일보에 기고한것임. 출처: https://m.cafe.daum.net/heocheonik/DiYh/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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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나와 템플스테이를 같이 가던 고등학교 친구가 마침 한국에 있어 같이 절을 방문했다.

배운 점이 너무 많았는데, 원적사 방문기는 나중에 따로 올려야겠다.



오는 길에는 이천 쌀밥을 먹으러 갔는데 이렇게 맛있는 쌀은 처음 접해본다. 이런 건강한 느낌의 한정식이 좋아지는 나이가 벌써 올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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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라마틱한 대학 동기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한국에서 계절학기를 듣던 시절, 수업이 끝나자마자 당구를 치러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나서 보통 술을 마시러 갔던 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그때와 비슷한 스케쥴이다. 오후 3시쯤 만나서 당구를 실컷 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장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장어가 맛있긴 했다. 이후에 바에 가서 위스키도 한 병 까서 가격이 꽤 나갔던 것 같았지만 환율이 1400 원대 후반대라는 생각을 하고 달러로 계산하면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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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새벽 늦게 집에 도착해서 다음 날 점심약속을 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었는데, 만나고 보니 셋이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누가 보기에도 정점에 도달한 친구들인데, 10년 전에도 둘 다 반에서 한 가닥 하던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도 결대로 가는 게 있나?

 

아, 참고로 내 인생 첫 '오마카세' 였는데 지난 며칠간 맨날 맛있는 것만 연속으로 먹으니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참치 뱃살에 휘황찬란한 장식이 들어간 초밥이던, 별의별 고급 재료가 들어간 김말이던 약간 과하단 생각이 들었고 의외로 가장 인상깊었던 초밥은 제일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는 박고지 초밥이었다.

 

 

이러고 이 날도 약속을 두탕 더 뛰고 나니 몸이 남아나질 않더라. 당분간은 집에서 좀 자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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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형 가족이 또 놀러 왔다. 조카랑 ‘집 색칠하기’ 놀이를 해 줄려고 밑그림을 슥슥 그려줬다.

 

어린아이들 그림은 참 신기하다. 조카는 저렇게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회 검 갈 순서를 고집하는데, 저렇게 크레파스 10개를 번갈아 쓰는 것을 보면 참 열정적이란 생각이 든다.나는 귀찮아서 색 4개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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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자숙을 좀 하다 윗 학년 대학 친구를 만났다. 가락시장에서 회에 청하를 한 잔 하고 코엑스에 갔는데 같이 영풍문고를 가자 그러더라. 나를 데리고 책방에 가는 친구는 처음이었던 것 같지만 너무 신선한 경험 같아서 같이 책을 보러 갔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라는 책의 소개란에 쓰인 “삶에 지치면 특별한 날보다 아무 일 없는 주말이 더 좋아진다” 라는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너무 워커홀릭인가? 요즘 핫해 보이는 미국 ETF 배당주 관련 베스트셀러가 있기에 바로 펼쳐 보았다. 기대했던 대로 옵션 관련 내용이 있길래 자세히 살펴봤는데 좀 이상한 문장을 찾았다:

 

 

‘콜옵션과 풋옵션을 판매하면서 인컴수익 을 창출하고’ ??

 

커버드 콜은 봤어도 여기에다가 풋을 판다는 전략은 뭐 스트래들도 아니고, 좀 화가 났다. 너무 정신병자처럼 깐깐히 보나? 어쩔 수 없다. 숫자에 관해서는 맞는 말을 해야 되지 않는가.

(TMI 로 들어가자면 풋을 판매하긴 하지만, 풋을 판매하고 그 돈으로 콜을 사들여 주식을 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synthetic long’, 그리고 그 후 다른 콜을 판매하여 그것으로 옵션 프리미엄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ETF 를 운용하는 Yieldmax 의 공식 문서에는 ‘synthetic covered call strategy’ 라고 언급한다. 풋 옵션 판매로 받는 수익은 없다

 

역시나 책 제목을 보니 ‘40대 까지 은퇴’ , ‘초고배당’, ‘월급만큼’ 등의 자극적인 말들이 듬뿍 쓰여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제 서적이 흥행한다는 것은, 돈버는 것은 절대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다들 공짜를 원한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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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새로 만난 사람들이랑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생애 처음 가 봤는데, 정말 넋을 놓고 본 것 같다.

 

한국 미술도 그만의 맛이 있다. 내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해서 그런가? 뭔가 더 친근하고, 따뜻하고, 심금을 울린다. 아마 내 한국 여행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던듯.

 

아, 미술관을 들리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재밌고 인상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그림을 그릴 때 든 생각, 평소 이 사람의 성격과 마음, 이 모든 것이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게 너무 재밌었다. 뭔가 한 수 배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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