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인생이 왜 짧은가

주네스 2020. 1. 9. 15:53

나이가 반오십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새해가 반갑지가 않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생일도 마찬가지다.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와 함께 오던 내 생일은 항상 기대의 연속이었지만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생각도 점점 없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란건 유일하게 삶에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중간고사를 하나 망치고 시간을 하루만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만큼 20대를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문뜩 든다.

 

'인생이 왜 짧은가' 를 읽으면 루키우스 안토니오 세네카라는 로마시대 철학자의 인생에 대한 견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독후감이기 이전에 자기계발을 위해 쓰는 글이기 때문에 나의 해석을 한번 적어보겠다.

 

이 책의 소개는 이렇다:

 

" 우리는 무수한 타인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일도, 사랑도, 미래의 계획까지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죠. 바깥 세상과의 관계에 분주해질수록 내면과는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린 후가 되기 쉽죠.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외부적인 요인들에 시간을 빼앗겨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살기 쉬운 현대인들을 위한 짧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자신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기 쉬운 시대니까요."

 

이 글을 보자마자 이건 너무나도 나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만 6세 까지의 나이를 제외하고는 항상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6살 때 이탈리아에 넘어와 초등학교 4 학년 때까지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이탈리아인들과 알파벳을 배웠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치동 키즈의 전형적인 하루 12시간 공부 스케쥴을 소화하며 입시에 내 인생을 바쳤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교외의 중학교에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미국 아이들과 방황을 했다.

 

곧이어 바로 특목중, 특목고에 진학하며 한국의 살인적인 교육열을 경험하였다.

 

어떻게 보면 파랑만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내 10대이지만, 한편으로는 '나' 라는 존재를 굳히기에는 10대에 너무나도 많은 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탈리아에서 풀밭에 뒹굴며 노란머리 아이들과 뛰어놀던 경험은 한국에서는 교실 마룻바닥에서 씨름을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담배를 피고 돈을 뜯거나 학원을 땡땡이치는 불량학생들이 미국 중학교에서는 총을 들고다니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아이들로 바뀌었으며

 

마지막으로 특목고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미국 교육과 정반대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주의' 를 경험하며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난 항상 내 자신을 물렁하고 둥글둥글하게 만들었다.

 

난 항상 '예전의 나' 를 새로운 사회에 접목시킬 수가 없었고 더욱더 내 자신은 녹은 쇳물처럼 물러져 갔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군대에 다녀오니 내 녹은 쇳물같은 자아가 너무나 갈데없이 느껴졌다.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모양이라는 틀이 있는데, 이 틀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정한다고 하면, 나는 틀에 맞을 수가 없는 액체상태가 되어버렸다.

 

최근에야 이 틀은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만 굳어지고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틀에 들어가기 전부터 쇳덩이 상태이면 그것은 부적응이라고 불릴 수 있겠지만, 쇳물 상태에서 틀에 맞춰져서 굳는 것이 쓸모있는 쇠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내 자신을 넣을 틀을 생각해 보며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