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fiction
최악의 날
주네스
2024. 1. 12. 13:20
오늘 회사에서 최악의 날을 보냈다. 조금씩 경험도 쌓고 실적도 늘어나나 싶더니 오늘 몇 푼 더 벌려다가 30 분만에 5000불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금일 우리 팀에서 실적이 꼴지인 것은 당연하고 회사 꼴지를 달성해 버렸다. 순식간에 잃기 너무 큰 액수였는지 리스크 팀과 면담도 하고, 팀장도 리스크 팀에 같이 불려갔다. 오늘 팀 실적 발표 이메일에 오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보고해야 했다.
나는 원래 리스크를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내 돈이면 더 그렇다. 10만원이라도 없어지면 마음이 심란하고 떨어지는 차트를 하루에 10번은 보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트레이딩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써 내가 겁을 먹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더군다나 하루하루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면 더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1개를 사서 1달러의 차익을 내서 팔 수 있으면 재빨리 40개, 1000개를 사서 40불, 1000불을 뽑아내야 한다.
물론 40개를 산 순간 몇 초 안에 파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끔씩은 안 팔릴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40개를 산 만큼 리스크를 진다. 특히 옵션에서는 기초자산이 가격변화에 따른 옵션가격 변화량 (델타,https://juanito20.tistory.com/10 참조) 가 가장 크기 때문에 40개를 들고 있으면 그만큼 델타에 노출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delta risk)
그래서 가장 안전한 전략 중 하나가 Arbitrage (차익거래) 다. 이론상 차익거래는 무위험이 맞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 라는 법칙에서 '비싸게 판다' 라는 것이 이미 성립되니 '싸게 산다' 만 잘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차익거래를 할 때 Max size ( 최대 사이즈) 를 하라고 배운다.
최근 들어 옵션 시장에서의 뜨거운 감자인 CYTK (Cytokinetics) 는 요 근래 며칠동안 최고조의 변동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12월 말에 30불 언저리던 주가는 이틀 전에 110불에 거래되고, 잔잔한 날에도 하루에 10퍼센트는 거뜬히 넘는 변동성을 보여줬다. 더구나 시가총액도 $8.3B 정도로 작지는 않은 기업인데, NVS(Novartis) 가 인수한다는 뉴스가 뜨면서 이 딜이 성사될지, 안될지, 가격은 얼마일지 미친듯한 베팅들이 들어왔다. 누구는 110불은 거뜬하게 넘을거라고 주장하면서 콜옵션을 사들이고, 누구는 이제 거품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콜옵션을 미친듯이 팔거나 풋옵션을 사들이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옵션계의 불구덩이었다.
리스크를 지더라도 가서 화끈하게 벌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으니 나는 마다할 일이 없이 주저하지 않고 이번 주 내내 CYTK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갔다.
오늘도 쏠쏠하게 몇 가지 돈을 벌던 중에 상당히 괜찮아보이는 차익거래가 보였다.

(위 사진은 INTU 라는 주식의 콜 옵션과 풋 옵션을 동시에 매수하는 Straddle 이다. 17.25 에 산다는 주문이 1개씩 ARCA, BOX, CBOE, ISE 에 들어온 것이고,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 다른 거래소 EMLD, EDGX, MIAX, PHLX 에 차익거래를 하기 위해 더 싼 가격에 사려는 주문들이다)
내일 만료하는 CYTK 88콜옵션을 매수하고 내일 만료하는 93 콜옵션을 매도하는 Vertical 스프레드다. 누군가가 이것을 $3.35에 50 계약을 산다고 ISE 거래소에 주문을 걸어 놨길래, 나는 $3.25에 이것을 40계약을 산다는 주문을 걸어 놓았다. 이 중 16개의 계약이 체결되어서, 이것을 재빨리 $3.35에 ISE 거래소 주문에 팔아 arbitrage를 성사시켰다.
몇 분이 지나고 다시 $3.25에 산다는 계약을 몇 번 찔러봤는데도 반응이 없자 3.26불에 산다는 주문을 찔러보니 다시 16개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벌써 기분이 좋다. 수수료를 제하면 $0.10x16x100 + $0.9x16x100 = 304 불을 벌었기 때문이다 (옵션은 100배의 레버리지)
이제 원래 올려놓은 50 계약 중 내가 16+16=32 계약을 내가 차익거래했으니, 남은 18개도 내가 arbitrage를 하려고 $3.27에 산다는 주문을 걸어놓자마자, 내 주문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내가 체결되는 순간 어떤 알고리즘이 $3.35에 18개 계약을 팔아치워 버리면서 나는 순식간에 팔 곳이 없어졌다.
다행하게도 50계약을 사는 사람은 사실 총 100계약을 사려고 했었나 보다. 7분 동안 초조해하는 도중에 50계약을 사는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3.00에 50계약 주문을 올려놓았는데, 점점 가격을 올리더니 $3.30 까지 가격을 올려 주었다. 나는 $3.27에 산 입장으로써 조금 더 기다려서 $3.35에 팔려고 기다릴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 CYTK 차트를 보기 위해서 눈을 잠시 다른 모니터로 돌렸다. 음봉이 무언가 올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빨리 그냥 팔고 편하게 있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3.00에 누군가가 50계약을 다 팔아치워 버렸다. $3.27이라는 가격에 16계약을 들고 있게 된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장대음봉이 나타나더니 93불 쯤이던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한다. 아, 진짜 이번엔 몇천 불 날라갈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델타가 얼마지? 주식을 팔아서 조금이나마 헷징을 해서 델타 노출을 최소화 해야 되겠다.' 싶은 상황에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25델타 x 16계약 =400주를 팔기로 했다. (Delta Hedging)
하지만 이 장대음봉 안에서 내가 팔 수가 없었다. 내가 88불에 팔려고 하면 이미 매수호가는 86불로 떨어졌고, 내가 86불에 팔려고 하면 84불로 매수호가는 도망갔다. 말이 쉽지만, 400계약을 팔려는데 1불이라도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 85불에 팔 수 있는것을 84불에 파는 순간 이미 400계약이면 $400 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미친듯이 도망가는 매수호가를 잡아 400계약을 체결한 건 $83. 이미 내 실적 화면에는 빨간 숫자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내가 팔자마자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 reversal 지점이어서 내가 팔 수 있었던 것일수도 있다) 나는 헷징에서도 잃고 옵션 포지션에서도 돈을 잃는, 최악의 상황에 와 버렸다.
이미 내가 16계약을 들고있는 Vertical 스프레드는 가격이 휴지조각이 되기 직전이었다. 주가가 $81까지 이렇게 폭락하는데 내일 만료하는 88 콜옵션은 값어치가 $0에 가까워질 갈 것이고, 93 콜옵션은 당연히 $0으로 수렴할 것이다. 둘 다 델타값이 0으로 수렴하면서 내가 주식을 400계약 판 것은 무의미한 짓이 되어 버렸다. 결국 11시쯤, 나는 조금이나마 비싼 가격에라도 이 vertical 을 팔고 싶은 마음에 급한 마음에 16계약을 팔기 시작한다. $3.3에 산다고 해도 못 사던 이것은 20분만에 $1 에도 팔기 힘들었어 겨우 $0.90 정도에 16 계약을 판매했다. 옵션을 팔면서 팔았던 400주의 주식도 다시 사들여, 총 $4900 의 손해를 보고 포지션을 정리했다.
다행히 다른 트레이더들은 격려를 많이 해 주었다. 이런 날도 있을 거라고 메시지가 오기도 하고, 내 자리에 와서 괜찮다고 격려를 해 주기도 했다. 손발에 땀이 고이고 점심밥이 잘 안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 긴 하루가 어찌저찌 더 이상의 사고는 없이 지나갔다.

30분도 안 걸린 짧은 시간이었지만 $5000어치의 교훈을 얻은 것 같다:
1. 내일 만기하는 미친 변동성의 옵션에 큰 사이즈를 들고 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이다. 그리고 그 위험한 행위를 하는 와중에 '조금만 더 기다려서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아야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냥 자살행위다. 만약 앞서 언급한 $3.00에 판다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팔았으면 $0.27x16x100 = $457 의 손해였을 것이다.
2. 주가가 $84로 수직낙하 할 때 수치적으로 당장 내일 만료하는 88콜옵션과 93 콜옵션은 델타값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낮아진다 (더군다나 주가 차트가 장대음봉형 내리막일 경우 더 그렇다). 내 팀장은 이미 주가가 $87 이하로 내려간 이상 헷징의 의미가 전혀 없고 그냥 방향성 (directional)인 주식 판매라고 언급했다. 이 시점부터는 헷징을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손해가 더 적었을 것이다.